움직임은 변화가 아니라 응답입니다
움직임의 가치는 변화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몸과 생각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오늘 가능한 응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하여.
움직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변화를 떠올립니다. 더 유연해지는 것, 힘이 붙는 것,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이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황준성식 움직임에서 움직임은 변화 자체가 아닙니다. 몸과 생각과 환경 사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그에 대해 오늘 가능한 응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먼저 감지합니다
신호는 세 곳에서 옵니다.
몸에서 옵니다. 어제보다 무거운 어깨, 어느새 얕아진 숨, 오늘따라 잘 되는 한쪽과 잘 안 되는 한쪽입니다.
생각에서 옵니다. 해야 한다는 마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환경에서 옵니다. 방의 온도, 곁에 있는 사람, 오늘의 일정, 화면 너머에 함께 있는 얼굴들입니다.
이 셋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일정이 빡빡한 날에는 숨이 먼저 얕아지고, 숨이 얕아지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조급해진 마음은 다시 어깨를 올립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가리는 대신,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봅니다.
응답은 다섯 가지일 수 있습니다
감지한 뒤에 하는 일이 응답입니다. 응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 응답 | 이런 날에 |
|---|---|
| 움직이기 | 몸이 먼저 움직이고 싶어 하는 날 |
| 호흡하기 | 몸은 무거운데 숨은 다룰 수 있는 날 |
| 머무르기 | 지금은 지켜보는 것이 맞다고 느껴지는 날 |
| 도움받기 | 혼자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진 날 |
|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기 | 무엇이 맞는지 아직 모르겠는 날 |
다섯 가지 모두 참여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응답이라는 순서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도 응답입니다
다섯 번째가 가장 자주 오해받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다릅니다. 결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판단할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억지로 답을 만들지 않기로 하는 것이요. 몸이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았을 때, 서둘러 답을 정하면 그다음에 오는 신호를 놓치게 됩니다.
치료 과정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결정을 참 많이 요구받습니다. 그 사이에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한 시간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크기가 아니라 열림
그렇다면 잘한 날은 어떤 날일까요. 저는 세 가지가 조금이라도 다시 열렸는지를 봅니다.
감각이 열립니다. 아까는 없던 것이 느껴집니다. 등이 바닥에 닿아 있다는 것을, 숨이 갈비뼈 옆으로도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선택이 열립니다. 길이 하나뿐이었는데 두 번째가 생깁니다. 이 동작을 하거나 안 하거나가 전부였는데, 앉아서 해보는 방법이 보입니다.
관계가 열립니다. 혼자 견디던 것을 한 사람에게 말하게 됩니다. 화면 너머의 누군가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셋 중 하나라도 조금 열렸다면 그날의 움직임은 충분합니다. 각도가 몇 도 늘었는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래서 묻지 않는 질문
세션에서 저는 "오늘 얼마나 늘었나요"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 지금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 오늘은 어떤 방식이 가능하신가요
- 아까와 달라진 것이 있나요
세 질문 모두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없어야 오늘의 몸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근거와 한계
이 글은 제가 세션을 설계할 때 쓰는 관점입니다. 임상 지침이나 치료 방침이 아닙니다.
- 여기서 말하는 응답은 하루의 참여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필요한 진료나 치료를 미루자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기"는 세션 안에서의 선택입니다. 새로 생기거나 심해지는 증상 앞에서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담당 의료진께 알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 감각이나 선택이 열리는 정도는 개인차가 큽니다. 이 관점은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함께 해보아요
오늘 가능한 응답이 무엇인지, 혼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함께 살펴보려고 라이브 세션을 엽니다.
몸을 여러 렌즈로 나눠 보는 관점은 열두 가지 렌즈에 정리해 두었습니다.